천지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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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불인”

 

분당제일여성병원 원장 한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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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하는 농담 중 하나입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갖는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말이 많아지고
화를 잘 내고 기억력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세 가지는 연관성이 있다고 합니다. 나이가 들면서
기억력이 감퇴하고 능력이 감소하면서 자존심이 떨어지고 이를 보상하고자 말이 많아지고
화를 낸다는 것입니다. 일종의 전이 ”projection” 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약해짐을 거부하는 현상이라고
좋게 해석해 보곤 합니다. 요사이 저도 많이 느끼고 보기 싫은 노인의 모습으로 변하는 것이 걱정이 됩니다.

걱정하는 이유는 잔소리가 많아지는 제 모습을 직접 느끼기 때문입니다. 직장에서야 원장으로서
“지적질”을 해야 하는 것은 숙명이지만, 와이프나 자식들에게 똑 같이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잔소리 많은 남편이나 아빠로서 비쳐지지 않나 걱정입니다.
“아빠는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말을 하는거야”로  시작해서 “공부해라,” “빨리 집에 들어와라,”
“남자는 나중에 성공해서 사귀어라” 등등…..
너무 흔히 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사회 생활에서도 모든 사람들이 한 번은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내가 너를 생각해서 하는 말 인데…”, “나니까 이런 이야기를 하는거야…” 이런 말들이 진짜 생각해서
혹은 상대방을 사랑해서 하는 말인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천지불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늘과 땅은 어질지 않다.”는 말로 저 하늘과 땅은 그 안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에 대하여 사랑이라는 말로 간섭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도덕경에 나오는 말입니다.
“천지는 어질지 않으니 만물을 짚강아지처럼 여기고, 성인은 어질지 않으니 백성을 짚강아지처럼 여긴다.
天地不仁, 以萬物而爲芻狗. 聖人不仁, 以百姓爲芻狗”.추구는 제사상에 쓰이는 도구라고 합니다.
제사가 끝나고 버려지는 추구는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제사가 끝나서 버려지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자연이 만물을 사랑해서 비를 주고 계절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때가 그렇게 된 것입니다.
백성이 가뭄이 들어 배고픈 것은 지도자가 백성을 미워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그런 때라는 말도 됩니다.

“인” 즉, 사랑이라는 목적으로 잘못 사용하면 속박과 간섭이 될 수 있다는 말도 됩니다. 정치나 사회에서도
흔히 볼 수가 있습니다. 지도자의 잘못된 신념을 가지고 국민을 사랑한다는 말로 포장되어 강요하게 되어
나오는 상황을 많이 접하곤 합니다. 결혼 생활도 사랑이라는 말로 상대방을 강요하고 간섭하고
잔소리하는 것은 흔한 일이고 나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자식이 공부를 안하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거나 와이프의 말 습관이 거슬리고 직원들이나 동료들의
예의없고 게으른 모습들로 인해 말을 하고 싶을 때 한 번 내가 그들을 사랑해서 하는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마 자기의 분노나 어리석음을 감추기 위한 “다언”에  불과합니다. 자식을 다그치거나
와이프에게 잔소리하고 직원들에게 지적질하는 것이 손상된 자존심이나 권위 손상에 대한 보상작용일
뿐입니다. 내가 어제 공부하라고 했고 청소하라고 했고 그리고 차트 정리하라고 했는데 이루지 않은
분노의 표시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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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땅이 그저 만물을 그대로 볼 뿐 간섭하지 않는 것처럼 때로는 그대로 놔두는 것도 사랑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낍니다. 잔소리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한 번 바라보는 것이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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