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의사가 바라본 원격의료
|정신과 의사가 바라본 원격의료의 장단점
서울탑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김 성 찬
정신과 상담을 원격으로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처가가 제주도다. 어제 밤늦게 바다 건너에서 장인 어른이 올라오셨다. 대구에 일이 있어 오셨다가,
육지를 밟은 김에 오랜만에 딸도 만나고 손주들도 볼 겸해서 우리집을 찾으신 것.
처가가 멀지만 평소에도 장인어른은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거의 매일 볼 수 있게 되셨다.
기술의 발달 덕분이다. 카카오스토리에 아내가 올리는 사진에는 종종 장인어른의 댓글이 달린다.
응원의 메시지와 함께 ‘좋아요’, ‘멋져요’, ‘기뻐요’를 누르는 것도 잊지 않으신다. 때로 휴대폰 영상 통화로
아이들에게 덕담도 해주신다. 가끔은 컴퓨터 앞에 앉아 스카이프로 양가족이 같이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 만난다. 애써 만날 기회를 따로 만든다. 화면으로 보는 것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같은 공간에서 직접 대면하여 대화를 나누는 사이 무언가가 흐른다. 당연한 얘기지만, 휴대폰 영상통화로
볼 때보다 실제로 만나면 눈맞춤도 더 생생하고 아이들 목소리도 더 활기차게 들린다. 아이를 가만히
안아줄 수도 있고 세게 포옹할 수도 있다. 장난감 자동차에 태워 밀어줄 수도 있다. 어린 아기를 어깨 높이로
안으면 젖내가 난다. 느낌은 그렇게 모든 감각으로 다가온다.
웹으로, 모바일로 변환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살아있는 정보를 온전히 전송할 수 있는 매체가 있을까.
‘실재(real presence)’가 아무리 사실적으로 재현이 되고 가상이 현실 같아져도 꽤 오랫동안 우리는 서로 만나
이야기하고 살을 부대끼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게 삶이다.
정신과 상담은 말로 한다. 시진과 문진이 대부분이다. 접촉할 일이 거의 없다. 전문적인 기기로 측정할 것도
많지 않다. 원격진료가 도입되면 가장 문제가 없을 것 같은 분야다. 과연 그럴까.
웹 기반 카운슬링(web-based counselling)이 이미 활성화되어 있는 미국의 사례를 살펴보면서,
정신과 상담을 원격으로 할 때 어떤 이득이 있고,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그 미묘한 지점을 하나씩
짚어보기로 하자. (이하 내용은 NYT에 실린 기사를 요약하며 의견을 덧붙인 것이다.)
영상을 처리하고 전송하는 기술의 급격한 발달 덕분에 비디오 컨퍼런싱(video conferencing)을 통한
온라인 상담이 현실화됐다. 미국에선 breakthrough.com 같은 사이트에 수백 명의 전문적인 상담자(정신과 의사,
심리학자, 코치 등)가 등록되어 있다. 지역을 선택하고 (아래 이미지는 LA를 선택한 결과), 치료자 형태와
지불 수단, 전문 분야를 고르면 그에 맞춰 상담자가 뜬다. 전국적인 망을 갖춘 맞춤형 상담 서비스다.
이득은 분명히 있다.
1) 환자가 차를 끌고 나가 운전하고 주차하고 클리닉을 찾느라 고생할 필요가 없다. 값도 괜찮다. 상담자는
집에서 일할 수 있으니, 왔다갔다 교통비도 안 들고, 상가 월세도 아낄 수 있다. 저렴해지는 게 당연하다.
상품 비교하듯 치료자의 프로필이 배너로 진열되고 소비자가 취사선택한다. 품질 경쟁, 가격 경쟁이
따라붙게 되어 있다.
2) 눈비가 심하게 와도 치료를 거를 필요가 없다. 멀리 여행을 떠났어도 원한다면 스카이프로 상담자와
접촉할 수 있다. 의료접근성이 나쁜 지역의 환자들도 나쁘지 않은 수준의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의사가 사정이 있어 원거리의 다른 클리닉으로 옮겨갔을 때도 주치의를 바꾸지 않아도 된다.
치료의 접근성이 향상되고, 연속성이 보장된다.
3) 강박장애나 공황장애는 웹 기반의 인지행동치료가 효과적일 수 있는 질병이다. 일부 치료는
매뉴얼화될 수 있다. 상담자가 한 주간 해올 과제를 내주고 그것을 환자가 실시간으로 완성하면서 적절한
피드백을 해주면 치료 진행이 더 원활할 수 있다. 인터넷 중독을 인터넷으로 치료하는 건 어떨까.
13세에서 25세 사이의 연령대라면 큰 거부감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 가능한 얘기다.
4) 시장성은 있다. 합리적인 가격에 양질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면 적당한 돈을 지불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지식인 검색보다 출처가 명확한 의료 정보를 듣는 게 낫다. 내공이 아닌
돈을 지불하겠다는 수요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웹 기반의 치료를 경험해본 상담자들은 몇 가지 우려를 내놓는다.
1) 눈맞춤이 잘 안 된다.
스카이프로 영상통화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하게 되는 일이다. 서로의 얼굴을 화면으로 보면서
대화하지만 시선은 제각기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 카메라를 쳐다보지 않고 모니터를 들여다보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눈맞춤은 상대를 이해하고 돕는 데 매우 중요한 수단이다. 엄청나게 많은 정보가 그 안에
들어 있다. 영상 대화에서 시선은 엇갈리고, 측정할 수는 없지만 중요한 정보들이 누락된다.
2) 실시간은 과연 실시간일까.
원격 상담은 실시간에 근접한 경험일 뿐 똑같지는 않다. 상담은 타이밍의 예술이다. 환자가 이야기를 하다
잠시 멈추는 순간에도 의미가 있다. 말이 오가는 순간마다 많은 일들이 벌어진다. 원격으로 나누는 대화에는
약간의 타이밍 지연이 발생하는데, 그로 인한 시차가 미묘하게 대화를 뒤흔들 수 있다.
3) 현실검증력이 약한 환자에서는 사소한 영상 왜곡도 문제가 될 수 있다.
흰 벽을 배경으로 하얀색 옷을 입고 상담에 임한 치료자의 얼굴이 콘트라스트 때문에 어둡게 보였는데,
환자가 귀신을 본 것처럼 놀란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초진만큼은 반드시 직접 본다거나
최소 3개월에 한 번은 대면진료를 통해 온라인 상담의 부족함을 보완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치료자도 있다.
4) 온라인은 실제 대화에 비해 틀과 격식에 비교적 덜 얽매인다.
이는 장점도 될 수 있고 단점도 될 수 있다. 치료 받던 환자가 일방적으로 프로그램을 닫고 나가버릴 수 있다.
힘든 이야기를 하던 중간에 갑자기 불편해져서 박차고 일어나면 막을 방법이 없다. 그런 상황이 오면
치료자가 전화를 하기로 사전 약속이 되어 있다 해도 전화 역시 안 받으면 그만이다.
5) 부적절한 친밀감이 싹틀 수 있다.
전이는 언제든 일어나는 현상이지만 온라인에서는 퇴행이 가속화될 여지가 있다. 같은 공간에서라면
일정한 거리 유지가 가능하지만 온라인에서는 그렇지 않다. 너무 빨리 ‘가드’를 내리면 위험해질 수 있다.
6) 응급으로 접촉하고 있는 사이 불상사가 일어날 수 있다.
치료 초기에는 증상이 좋아지기보다 나빠지는 경우도 흔하다. 자살 생각이 있는 환자나 현실검증력이
약화된 내담자를 온라인으로 상담하면 예기치 않은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 대면 치료와 비-대면
치료의 적응증을 아무리 잘 나눈다 해도 경계에 선 환자들까지 포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자기 신분을
다 노출하지 않고 익명으로 치료를 받던 환자에게서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은 누가 질까.
7) 상업화의 폐해도 뒤따른다.
상담서비스를 운영하는 회사가 회원을 모집하기 위해 과도한 프로모션을 한다면 (예를 들어,
사용 후기를 남겨서 채택되면 6개월 무료), 이것 역시 치료를 왜곡할 가능성이 있다. 사기의 위험성도 있다.
치료자가 적절한 자격을 갖췄는지 검증하기가 쉽지 않다. 산업화가 상업화가 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약자의 몫이다. 환자가 약자다.
8) 그밖의 문제
– 수가, 보안, 사생활 보호
현대의학의 핵심에는 ‘근거(evidence)’가 자리하고 있다. 충분히 살피고 더 많은 경험을 쌓고 엄밀한 연구로
근거를 확립해야 한다. 급하게 마음먹어서는 곤란하다. 경제 논리가 우선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물어야할 질문은, “그게 정말 환자들에게 도움이 됩니까?”여야 한다. 무엇보다 환자의 안전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