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크 예술 3
|바로크 예술 3 – 카라바죠
연세제일내과의원
노현정 원장
<중세의 흔한 성(聖) 모자(母子) 그림>
서양의 중세 1000년간은 이런 그림들이 대부분 이었습니다. 거의 다 성서 속의 인물들이 주인공이고, 화려한 의상에 표정과 자세도 비슷합니다. 그 당시 그림의 목적은 아름다움을 추구하거나 인간의 창조성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글을 읽지 못하는 대중에게 성서의 내용을 전달하여 교회의 권위를 세우는 것이었으니까요. 미안한 얘기지만 어떤 역할을 맡아도 똑같은 표정에 시간이 흘러도 연기력의 발전이 별로 없는 탤런트 김태X씨와 비슷하지요. 그래도 예쁘니까… (절대 개인감정은 없어요.^^)
< 엠마오에서의 저녁 식사>
그러다가 르네상스 시대부터 인물들의 표정이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고, 드디어 바로크 시대가 되면 발(足)연기를 벗어나 위의 그림처럼 메소드 연기가 가능해 집니다. 예수의 제자들이 스승이 부활해서 찾아온 것을 알고는 깜짝 놀라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과 깜놀하고 있는 제자의 얼굴에 밝은 하이라이트를 주고 다른 배경은 어둡게 처리해서 더욱 극적으로 보이는 효과가 있지요. 인물들도 생생하게 잘 그렸지만 식탁위의 음식들도 그림을 뚫고 나올 것처럼 생생합니다.
좀 오버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역동적인 바로크 건축과 마찬가지로 바로크 그림도 음영의 차이를 극대화시키고 인물의 표정과 동작을 극적으로 처리해서 감성에 대한 호소력을 가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런 바로크 그림의 창시자가 바로 카라바죠입니다.
Michelangelo Merisi (미켈란젤로 메리시)
카라바죠의 본명입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 예술가인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와 이름이 같지요. 원조 미켈란젤로가 워낙 유명하다보니 카라바죠 출신의 미켈란젤로라고 불리다가 나중에는 그냥 고향의 지명(地名)인 카라바죠(Caravaggio)로 불리게 됬다네요. 우리나라의 ‘순천댁’, ‘양평댁’과 같은 호칭입니다.
위의 그림은 과거 이태리 화폐의 도안으로 사용된 카라바죠의 초상화인데요, 솔직히 인상은 별로 좋지 않아요.
좀 무섭죠? 소도둑….?
<병든 바쿠스>
카라바죠는 젊은 시절 밀라노에서 수련을 받은 후 그 당시 서구 세계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로마로 갑니다. 로마 입성 당시 가난한 무명 화가가 얼마나 고생 했는지를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병에 결려 죽다 살아났는데, 그 때 자신을 돌봐준 여관 주인에게 그려준 그림이랍니다.
자신을 병에 걸린 바쿠스로 묘사한 자화상입니다. 우리나라 넘버원 드링크제인 ‘박카스’의 유래가 되는 그리스 신 바쿠스는 술과 축제, 저항과 일탈 그리고 광란의 예술을 관장하는 신입니다. 비록 자신이 지금은 병들고 초라하지만 언젠가 예술의 신과 같은 뛰어난 존재가 될 것이라는 자신감을 보여주는 그림이라고 하네요. 그리고 그 예언은 실현되지요.
<마테오를 부르심>
실력이 뛰어난 카라바죠는 곧 로마에서 자리를 잡습니다. 빛과 어둠의 대비, 극적인 인물 묘사는 위기의 카톨릭 교회가 애타게 찾아 헤매던 감동적인 예술형식에 딱 맞아 떨어지거든요. 시대의 요구에 부합하는 창조성이란 이런 것이겠죠? 위의 그림은 예수님이 본인의 제자로 마테오를 지명하는 순간을 표현한 그림입니다. 예수님의 손끝을 따라 빛이 뻗어나가고 가장 밝은 부분에 “뭐? 나??? 헐~~”하고 있는 마테오가 그려져 있습니다.
마테오는 원래 로마를 위해 유대인들에게 세금을 걷는 세리로 일하고 있었는데, 돈 욕심도 무지 많고 같은 유대인들에게 천대 받던 속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예수님이 부르시자 그 즉시 물욕의 세계를 떠나 구도의 길을 떠나요. 예수님 사후에는 마태복음까지 집필합니다. 그런 내용을 알고 보면 이 그림 속 순간이 굉장히 극적인 순간이죠.
<성모 마리아의 죽음>
성모 마리아의 죽음이라는 그림입니다. 당시 로마에서 익사한 어떤 창녀가 있었는데, 그 얼굴과 시신을 성모 마리아로 묘사한 그림이랍니다. 현대에는 마리아의 인간미와 리얼리티를 살린 걸작 그림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당시 로마의 성직자들은 경악을 합니다. 심지어 작품을 의뢰한 사람에게도 거부당합니다.
성모 마리아의 시신은 정말 시체처럼 그렸고 주변에서 애도하는 예수의 제자들도 허름한 의상에 평범한 인간의 모습이지요. 하지만 진심으로 애도하는 마음이 느껴지지 않나요?
<악사들>
정말 감동적인 종교화를 창시한 카라바죠이지만 그의 인성과 삶은 경건함과는 매우 거리가 멀었습니다. 술만 먹었다 하면 다혈질에다 폭력적인 개망나니 성격이 드러나고, 당시 사회에서는 용납되지 않았던 양성애자(bisexual)였다고 합니다. 특히 위의 그림 속 인물 같은 소년들을 좋아했다고 하네요. 에휴~~ 노답(NO 답)이죠.
카라바죠는 하숙집 주인에게 돌 던지기, 경찰에게 욕설, 불법 무기 소지, 폭행 등등 15차례나 법원에 기소되었는데, 그의 막강한 후원자들 덕분에 풀려납니다. 무려 별이 15개…
그러던 중 평소 감정이 있었던 사람과 싸움이 붙었는데 홧김에 상대방을 칼로 찔러 죽입니다. 아무리 빽이 좋아도 살인은 큰 죄였기 때문에 카라바죠는 사형을 선고 받지요.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
그래도 악당 카라바죠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고 야반도주를 해서 도망을 칩니다. 나쁜 짓을 많이 하고는 다녔지만 새가슴이었는지 매일 감옥에 끌려가는 꿈을 꾸었고, 잠을 잘 때도 옷을 입고 신발을 신고 잤다고 하네요. 그렇게 불안에 떨던 카라바죠는 다시 로마로 가서 교황의 사면을 받기로 결심하고, 교황에게 뇌물로 줄 목적으로 위에 보시는 걸작 그림을 그리게 됩니다.
목이 잘린 골리앗의 얼굴을 지금 죄인 신분인 자신의 얼굴로 그렸고, 승리한 다윗은 젊은 시절 순수했던 자신의 얼굴로 그렸습니다. 자신은 이미 참수형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스스로 고통 받고 속죄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제가 교황이었다면 자신의 죄를 참회하고 있는 다윗의 슬프고도 진지한 얼굴을 보고 감동을 받아 형량을 많이 감량해 주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흡인력이 대단한 걸작입니다.)
하지만 카라바죠는 위의 그림을 전달하기 위해 로마로 오던 중 말라리아에 걸려 ‘포르토 에르콜레’라는 섬에서 객사하게되고, 전염병이라 시신도 그 곳에 버려집니다. 얼마 전 카라바죠를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그 시대 화가들은 물감의 납 성분에 중독된 경우가 많다는 것에 착안해 ‘포르토 에르콜레’의 단체 무덤에서 납 중독이 심한 유골을 찾는 것을 보았습니다. 당시 찾아낸 유골과 카라바죠 후손의 DNA가 일치 하더군요. 빙고~~
결론은 카라바죠의 성질이 점점 포악해지고 다혈질로 변해 갔던 것이 싸구려 물감에 들어 있는 납 때문에 나타난 납 중독 증세에서 기인했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그는 엄청나게 많은 그림을 그렸으니 심하게 중독되었겠지요.
<홀로페네소스의 목을 치는 유디트>
아무리 납중독이 되어 머리가 맛이 갔다고 해도 카라바죠는 나쁜X이죠. 하지만 죄를 지은 후 많이 고민했고, 구원받기 위해 노력했던 흔적이 그의 그림들에 잘 나타나 있어요. 그는 살인을 저지르고 쫓겨 다니는 동안 참수 관련 그림들을 많이 그렸습니다. 죄 많은 본인이 미웠는지 위 그림에서 참수를 당하고 있는 남자의 얼굴도 자신의 얼굴로 그렸답니다.
<성 바오로의 개종>
고대 힌두교 설화에서는 태초에 선과 악은 한 몸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병든 거지가 예술의 신이 되고, 돈만 밝히던 속물이 거룩한 성서의 저자가 되고, 창녀로 살다 비참하게 죽었지만 그림 속에서 성녀로 애도를 받고, 예수를 혐오하던 사람이 한순간에 예수의 열렬한 추종자로 바뀌고(사도 바오로)….
카라바죠 자신도 그림 속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빛과 어두움 같은 삶을 살았던 예술가였습니다. 밝은 빛이 있기 위해 깊은 어두움이 있어야하듯 악함과 나약함, 욕심과 비속함, 혼돈과 무절제 같은 어두운 본성들도 인간 본성의 한 면임을 부인할 수 없지요.
카라바죠는 세상을 선과 악으로 명확하게 구분하던 기존의 가치관에 반기를 들고 입체적인 인간상을 보여주었으며, 진흙탕 속의 연꽃처럼 죄악으로 물든 삶 속에서도 참회와 구원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최고의 걸작 그림들을 남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