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호크니 – 되찾은 시간들
|성남시의사회 학술부회장 노현정
데이비드 호크니 (David Hockney) – 되찾은 시간들
<The Bigger Splash, 더 큰 첨벙>
요새 가장 핫한 전시회의 주인공이자 작품 값이 가장 비싼 생존 화가라는 타이틀을 가진 데이비드 호크니.
그에 대한 뉴스나 해설서를 보면 ‘그는 동성애자다, 그의 작품은 비싸다, 색감이 좋다.’ 외에 잘 설명된 것이 없더라구요. 얼마전 스카이 A&C 채널에서 호크니에 대한 BBC 다큐멘터리를 방송했는데요, 멋지고도 미스테리한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어 소개드릴까 합니다.
<My parents>
데이비드 호크니는 1937년 영국 북동부 요크셔 지방의 브래드포드 라는 동네에서 태어났습니다. 맨체스터와 같은 공업 도시인데요, 우리나라의 창원 공업 단지 정도 되지 않을까합니다. 호크니의 아버님은 회계사였지만 스스로를 노동자 계급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는 아들에게 이렇게 조언했죠.
“세상의 평판에 신경쓰지 마라. 그런건 귀족들이나 하는거다,”
호크니는 어려서부터 미술에 재능이 있었고, 런던에 있는 왕립예술학교(RCA)를 졸업했습니다. 젊은 시절 사진에서 번뜩이는 호크니의 천재성이 엿보이는듯 합니다.
모두 잘 아시듯이 그는 게이 였구요. 지금은 상상이 잘 안가지만 1960년대 영국에는 동성애 금지법이 있었습니다. 세상의 평판에 신경 쓰기 싫었던 호크니는 미국 뉴욕으로 와서 여러 팝아트 화가들과 안면을 틉니다. 그 동네는 동성애자들의 천국이었어요.
<Henry Geldzahler and Christopher Scott>
그리고 운이 좋게도 본인의 실력을 알아봐 주는 최고 위치의 큐레이터(Henry Geldzahler, 뉴욕 메트 미술관 큐레이터) 까지 나타납니다. 그의 부모님 그림과 마찬가지로 호크니의 특기인 이중초상화 입니다. 두명의 실존 인물을 배치한 초상화인데요, 서로가 서로에게 단절되어 교감이 없는 쿨한 느낌이 들지요.
인물의 배치에 많은 공을 들였고, 그림 속의 빛이 인물의 내면을 꿰똟는듯 합니다. 미국 화가인 에드워드 호퍼와 닮았어요. 서로 다른 인물의 개성과 내면 세계를 한 화면에서 배치시켰다는 점에서 매우 독창적입니다.
데이비드 호크니는 어렸을 때 이태리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라는 그림에 많은 감명을 받고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천사가 동정녀 마리아에게 예수님의 잉태 사실을 알리는 그림이죠.
<Mr and Mrs Clark and Percy>
이 이중초상화는 ‘수태고지’란 그림의 영향을 받은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입니다. 백합은 성모 마리아의 순결함, 꽃병과 바깥 베란다의 문양들은 여성의 자궁 (임신을 상징하죠), 오른쪽 아래의 전화기는 중요한 메세지 전달을 암시합니다. 인물들은… 알아서 상상하세요.
<정원>
호크니는 캘리포니아 여행 중 멋진 풍경과 온화한 날씨에 감명을 받았는데요, 음침한 뉴욕을 떠나 LA의 부촌인 할리우드 언덕에 근사한 집을 삽니다. 출세했어요.
호크니는 풍경을 그릴 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닌 시각적 내용을 본인의 뇌에서 재구성한 그림들을 그렸습니다. 원근법을 무시한 뭔가 불편한 느낌의 배치를 보면 그가 왜 제2의 피카소라는 얘기를 듣는지 아실 수 있을겁니다.
그의 그림들 중 가장 고가에 거래되는 것이 수영장 그림입니다.
그런데 왜 수영장 그림을 많이 그렸냐구요? 수영장은 옷 벗은 남자들을 당당하게 관찰할 수 있는 곳이거든요. 다소 외설적이고 불편하게 들리실 수도 있지만, 옷 벗은 여자들은 잡지와 영화에서 볼 수 있지만 그 반대는 별로 없습니다. 19세기 유럽의 발레 공연장처럼 관음적인 데이비드 호크니의 예술 세계가 펼쳐지는 곳이 수영장입니다.
호크니의 수영장 그림을 보실 때는 수영장 물과 물 표면의 일렁거림이 그의 예술 세계를 상징한다고 보시면 거의 맞습니다. 섬세하고 멋진, 경쾌한 수영장 그림이지만 물에서 나온 저 남자는 심리 상담을 받고 있는듯 심각하고 사색적이지요. 경쾌함과 심각함, 퇴폐미와 근엄함이 공존하는 특별한 그림들이 호크니를 세계 최고의 화가 반열에 올려 놓았습니다.
몇 년전 1000억이 넘게 거래된 데이비드 호크니의 그림입니다.
수영장의 물은 예술 세계를 표상한다고 했지요. 물에 잠겨 있는 남자는 데이비드 호크니 자신입니다.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만들어 그 안에 이미 안착했습니다.
반면 바깥의 남자는 호크니의 동성 애인이었던 피터 슐레진저입니다. 그는 호크니 보다 젊었고 수습을 막 마친 화가 견습생이었는데요, 이 당시 둘은 헤어진 상태입니다. 슐레진저는 물 밖에 있지요. 아직 자기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하지 못한채 심각한 얼굴로 호크니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수영장 주변의 풍경은 평범한 풍경화이지만, 수영장의 두 남자는 서로 다른 예술 세계에서 갈등하고 있습니다. 삶과 예술의 부조화를 생생히 느낄 수 있습니다.
내가 어떤 분야에서 주류에 편입하지 못한 아싸(아웃사이더)라고 느껴질 때 물 밖의 남자를 바라보면 묘하게 공감이 가요. 역시 비극적인 그림이 더욱 비싼 값을 받는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