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된 죽음,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성남시의사회 공보위원회 왕민정이사
준비된 죽음,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요즘 국가에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제도에 대한 홍보를 대대적으로 하면서, 환자들의 문의가 종종 있습니다. 최근 60대 이상에서는 꽤 이슈가 되어, 자녀들에게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미리 작성해 두어야 한다는 생각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2월에 시작되어 8개월이 지난 현재, 사전연명의료의향서 7만명 이상, 연명의료계획서 1만명 이상 작성하였다고 하니, 이 제도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높은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올해 2월부터 시행된 연명의료결정법은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자기의 결정이나 가족의 동의로 연명치료를 받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정식 명칭은 ‘호스피스ㆍ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입니다. 이를 위해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여 통합된 시스템에 등록, 국가에서 관리하게 되며, 향후 필요한 의료기관에서 검색할 수 있고, 법적으로도 효력을 갖습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임종과정에 이르렀을 때를 대비하여 연명치료(기관삽관, 심폐소생술, 항암치료, 혈액투석)에 대한 본인의 의견을 미리 작성해 두는 것입니다. 그리고, 연명의료계획서는 의료기관윤리위원회가 설치되어 있는 의료기관에서 담당의사 및 전문의 1인에 의해 말기환자나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로 진단 또는 판단을 받은 환자에 대해 담당의사가 작성하는 서식입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연명의료계획서
대상 19세 이상의 성인 말기환자 또는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
작성 본인이 직접 환자의 요청에 의해 담당의사가 작성
설명의무 상담사 담당의사
등록 보건복지부 지정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 의료기관윤리위원회를 등록한 의료기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란, ➀의학적으로 회생 가능성이 없고 ➁치료를 받더라도 회복되지 않으며 ➂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되어 사망에 임박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의료기관윤리위원회가 설치된 의료기관에서 담당의사와 전문의 1인에 의해 이러한 상태가 되었음을 판정받으면, 환자의 의사표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또는 연명의료계획서)를 반영하여 연명의료의 유보 또는 중단을 결정하게 됩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원래 민간단체에서 개별적으로 작성했었는데,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면서 국가에서 지정한 등록기관에서만 작성을 하게끔 되었습니다. 전국 어디서나 등록기관을 방문하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무료로 작성, 변경, 철회할 수 있습니다. 이 등록기관은 국가에서 신청을 받아 지정을 하게 되는데, 의원, 병원, 민간단체, 공공기관 등이 일정 요건(공간, 인력 등)만 충족하면 어렵지 않게 지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의향서에 대한 교육 및 작성은 각 등록기관에서 모두 무료로 진행됩니다. 의향서 작성을 할 때에는 반드시 1:1로 상담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등록기관 입장에서는 인력과 시간이 상당히 많이 듭니다. 그러나, 국가에서 등록기관에 대한 지원이 전혀 없기 때문에, 실제 운영이 매우 어렵고, 등록기관의 숫자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제도에 관심이 있었고, 치매 등 노년이 걱정되어 찾아오는 신경과 환자들에게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해주고 싶어, 등록기관으로 신청하여 지정되었습니다.
성남시 뿐 아니라, 경기남부(용인, 광주, 수원 등)에는 유일하게 저희 병원만 지정이 되어 있어, 하루에도 수십 건씩 문의전화가 오지만, 인력이 부족하여 모든 상담을 소화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건강보험공단 각 지사에서도 작성을 할 수 있지만, 대국민홍보가 지정등록기관 위주로 이루어지다 보니 병원으로 문의전화가 매우 많습니다.
현재 저희 병원에서는 예약제로 상담 및 작성을 진행하고 있고, 빠른 작성을 원하시는 분은 공공기관(건강보험공단 성남남부지사 및 북부지사)으로 안내를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작성을 하러 오시는 분들을 보면, 교회 등 단체에서 웰다잉에 대한 강의를 들은 후 찾아오시는 분, 최근 암을 진단받고 오시는 분, 친구들과 함께 찾아 오시는 분들 등 정말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나 아직은 제도가 정착하기까지 많은 시행착오가 예상됩니다. 등록기관이 부족한 것 외에도 실제 연명의료 유보 및 중단을 결정할 수 있는 의료기관윤리위원회를 둔 이행기관의 숫자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전국 의료기관 중 4.3%인 142개소만이 이행기관으로서 시스템에 접속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나 연명의료계획서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성남시에서는 분당서울대병원, 차병원, 분당제생병원, 보바스병원이 있는데, 이 병원이 아닌 다른 병원에서 임종과정을 맞게 되면, 사전에 작성해 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나 연명의료계획서를 확인할 수 없어 환자의 의사가 임상에 반영되기 어렵습니다. 또, 가족의 범위에 대한 논란, 연명의료 중단에 동의해 줄 가족이 없는 1인 가구나 독거노인의 경우 무연고자로 법 적용을 받을 수 없다는 점 등 실제 임상현장에서 제대로 적용되기에는 아직 많은 부분들이 논의되고 정비되어야 합니다.
의사로서, 또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한 인간으로서, “준비된 죽음”은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 보았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가족들과의 충분한 상의도 필요할 것이고, 나 스스로에 대한 성찰도 필요할 것입니다. 아직 많은 보완이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이 제도를 통하여 우울하고 슬픈 죽음이 아니라, “미리 준비된 죽음, 그래서 아름다운 삶”을 생각해 볼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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