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역사 기행5편
|프랑스 역사 기행 – 마지막편
노현정
프랑스의 19세기는 ‘벨 에포크'(La belle époque, 영어로는 The Good Era)의 시기로 불립니다. 프랑스의 평민들이 얼마나 가난에 허덕였는지는 일전에도 한번 말씀드렸고, 왕정이 무너진 후에도 나폴레옹의 정복 야욕과 여러 차례의 시민혁명 때문에 바람 잘 날이 없었습니다. (‘레미제라블’이라는 소설을 떠올려 보시라.) 하지만 19세기 중반부터 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프랑스에 큰 전쟁이나 사건이 없었습니다. 이때 프랑스에서는 시민 의식이 자리를 잡고 산업화가 이루어지면서 여가라는 개념이 생겨납니다. 또한 문화가 꽃피는 행복한 시기가 되지요. <구스타브 카유보트(Gustave Caillebotte) – 비오는 날의 빠리> <구스타브 카유보트(Gustave Caillebotte) – 강변 산책> 이 시기 빠리는 전 세계의 예술을 선도하게 되고 인상파, 입체파 등의 다양한 근대적인 미술이 생겨납니다. 위에 보시는 카유보트의 그림들을 보고는 언젠가 저 아름다운 19세기의 프랑스를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지요.
그런 생각을 한 것이 저만은 아니었나 봅니다. nike air max 2017 hombre Canotta All Star 2015 우디 앨런이 만든 <미드나잇 인 파리> 라는 영화에서도 주인공이 19세기의 빠리로 시간 여행을 다니는 내용이 나오더라구요. Maglia Allen Iverson <몽소 공원 (Parc Monceau)> 빠리의 개선문 북동쪽에 위치한 공원입니다. 서울로 치면 재벌가가 모여 있는 평창동쯤 되는 곳에 위치한 공원인데요, 관광객으로 북적거리는 다른 공원들과 달리 현지인들이 많이 방문하는 곳이지요. Adidas Pas Cher 주변으로 로스차일드가, 모파상 공작 등 프랑스에서 알아주는 거물들의 옛집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혹시 앞으로 빠리를 가시게 된다면 루브르 박물관에서 손톱만하게 보이는 모나리자를 찾아 헤매거나 괜히 에펠탑 한 번 올라가 보겠다고 주구장창 줄서는 고생하지 마시고, 몽소 공원에 들러 천천히 산책도 하고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니생 드 카몽도 박물관에 들러 보실 것을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니생 드 카몽도 박물관 (Musée Nissim de Camondo)> 몽소 공원과 붙어 있는 으리으리한 저택 중 하나로 프랑스 최고의 부자 가문 중 하나였던 카몽도 가문에서 통째로 기증한 저택입니다. 19세기 벨에포크 시대 빠리의 상류층 생활양식을 생생히 볼 수 있는 숨은 명소랍니다.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이 운현궁이나 북촌 한옥 마을을 들르는 것처럼 프랑스의 문화를 잘 체험할 수 있는 장소 중 하나입니다. Jordan Reed Redskins Jerseys <니생 드 카몽도 박물관 (Musée Nissim de Camondo) – 현관> 건물 내부에는 시계, 도자기, 수납장 등등 지금 현재 사람이 살고 있는 집처럼 필요한 살림살이 및 주인의 소장품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저 전시품들 하나하나가 역사적인 사연이 있는 귀중품들이라고 합니다. 수 백개의 소장품과 가구 목록을 책 한권으로 정리해 놓았는데요, 그 책을 가지고 다니면서 매일 매일 소장품을 점검하는 하인이 따로 한 명 있었다는군요. (부럽다~ 상속자들은 저렇게 사는구나.) 19세기 중반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마 타고 다닐 때 저 집에는 샹들리에 달린 개인 엘리베이터 시설까지 갖추었답니다. Emmanuel Sanders Jerseys <니생 드 카몽도 박물관 (Musée Nissim de Camondo) – 방> 얼마전 ‘꽃할배’에서 백일섭씨가 베르사이유 궁전의 방을 보면서 “마석가구 단지에 가면 더 좋은게 많은데, 겨우 이거 보려고 줄섰던거야?”하는 장면을 보면서 낄낄거렸지요. 카몽도 박물관의 가구들도 오래되어 빛이 바래고 후질그레해 보이는 부분이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곳은 베르사이유 궁전에 비해 매우 한적해서 하나하나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Maglie Oklahoma City Thunder 내용면에서도 베르사이유의 소장품들에 뒤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섬세한 프랑스의 장식 문화와 주인의 기품 있는 심미안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지요.
<니생 드 카몽도 박물관 (Musée Nissim de Camondo) – 서재> 특히 제가 맘에 들었던 장소는 저 서재입니다. 나는 언제쯤 애들 키워서 내보내고 책만 볼 수 있는 방을 만들 수 있을라나… <니생 드 카몽도 박물관 (Musée Nissim de Camondo) – 식당 옆 그릇장> 심지어 그릇들을 모아 놓은 방이 따로 있지요. 우리 엄마가 보면 얼마나 부러워했을까!! 저기 모아 놓은 그릇들만 가지고도 프랑스에서 여러 권의 책이 나왔을 정도로 진귀한 그릇들이라고 합니다. Asics Onitsuka tiger męskie <살로몬 카몽도 (Salomon Raphaél Camondo) – 사진 왼편의 인물> 위에 소개한 근사한 저택을 지은 무아즈 카몽도 (Moise de Camondo)의 할아버지입니다. adidasi new balance barbati pret 19세기 이스탄불의 유명한 은행가로 유대인답게 오스만 제국에 자금을 융통해 주고 세금을 운용해 막대한 부를 일굽니다. 이 당시 사람들은 카몽도 가문을 ‘동유럽의 로스차일드 가문’이라 불렀을 정도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로스차일드 가문은 영국과 프랑스 등 서유럽에서 은행업으로 막대한 부를 일군 유대인 가문입니다.) 하지만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오스만 제국이 서서히 기울면서 유대인들에 대한 반감이 커지자 이 할아버지가 가족들을 모두 이끌고 빠리로 이주합니다. 빠리로 이사 올 때 아예 기차 하나를 다 전세내서 가족과 하인들, 살림살이들을 옮겨온 얘기는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오고 있답니다. 카몽도 가문은 프랑스로 이주해서 여러 곳의 교육시설을 지어주고 많은 미술 작품을 수집해서 박물관에 기증합니다. 지금도 프랑스에서는 존경 받는 가문이랍니다. Womens Air Jordan 3 Asics Gel Lyte 3 Pas Cher <니생 드 카몽도 (Nissim de Camondo)> 솔로몬 할아버지의 손자인 무아즈 카몽도는 몽소 공원 근처에 위에서 보셨던 삐까번적한 저택을 지었고, 아름다운 부인과 함께 위 사진 속 인물인 아들 니생과 딸 베아트리스를 낳아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남부러울 것 없는 동화 속 해피엔딩 같지만 이제부터 불행이 시작됩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 무아즈의 부인이 어떤 이탈리아 귀족과 바람이 나서 이혼을 하는 바람에 아빠 혼자 자녀 둘을 키웠습니다. (프랑스 역사 이야기는 끝까지 불륜 얘기가 나오네요. 헐~) 그리고 사진에서 보시는 아들 니생이 세계 1차대전에 비행사로 참전했다가 전사합니다. New Balance 420 męskie 손이 귀한 카몽도 집안의 유일한 아들인데, 미혼인 상태에서 군대를 자발적으로 간 아들이나 군대를 보내준 아버지 모두 대단합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란 이런 것. 니생이 사망한 후 아버지는 저 저택 전체를 니생의 이름을 딴 박물관으로 기증하고 세상을 뜹니다. 덕분에 세상 사람들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아들 니생의 이름을 기억할 수 있는 것이지요. <니생 드 카몽도 박물관 (Musée Nissim de Camondo) – 정원> 카몽도 가문의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adidas nmd r1 uomo 유일한 후계자인 딸 베아트리스와 사위 그리고 그 자녀들이 모두 2차대전때 나치에게 끌려가 가스실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Soldes Chaussures Asics 프랑스에 많은 기부를 했기 때문에 안전할거라 생각하고 자리를 지킨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프랑스 정부는 나치에 점령당하자 유대인 명부를 넘겨주었고 베아트리스 가족의 명단도 들어있었다고 하네요. nike air max 2016 goedkoop 반면 로스차일드 가문은 재빠르게 미국으로 건너가 지금도 건재하며 전 세계 경제를 주무르고 있습니다. adidas zx 750 donna 유대인들은 욕심 많고 약삭빠르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그들의 입장이 이해가 되더라구요. Air Jordan 11 nike air max 2017 goedkoop 카몽도 박물관은 화려한 만큼 슬픈 가족 이야기가 어우러져 묘한 감동을 줍니다. <에트르타(Etretat)의 코끼리 바위> 빠리에서 북서쪽으로 1-2시간쯤 차를 타고 가면 노르망디 해변이 나옵니다. 19세기에 여가라는 개념이 생기면서 빠리 사람들이 기차를 타고 많이 방문했던 곳이고, 인상파 화가들도 자주 방문해 아름다운 풍경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사진 속 코끼리 바위는 유명한데요, 모네의 그림에도 여러 차례 등장하며 저 곳 에트르타는 ‘괴도 루팡’이라는 소설이 탄생한 곳이기도 합니다. 여행 후 프랑스 사람들은 먹는 것, 입는 것, 성적 욕망을 해소 하는 것 등의 삶의 욕구에 아주 충실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속물적인 욕구를 우아하게 해결하는데 천재적인 능력이 있고, 본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동등한 권리가 있음을 인정해 줍니다. Adidas ZX Flux Heren 한마디로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해도 로맨스’ 지요. Zapatillas New Balance 문화적 자부심이 강해 거만하다는 느낌을 주기도 하고, 침몰하는 타이타닉호 처럼 국력이 기울어 가고 있다는 인상을 받기도 했지만,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프랑스인들의 삶의 방식은 나름 배울 점이 많이 있었습니다. 오늘로 프랑스 역사 여행기를 마칩니다. 그동안 주절주절 긴 이야기 애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