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없는 대한민국
|조국 법무부 장관의 임명 강행으로 연일 뜨거운 정국이다. 어느 모임 자리를 가나 기승전 조국이다. 서로 의견이 다른 사람들끼리는 핏대를 높여가며 싸움이 일어나기 일쑤다. 조국 편을 들면 문빠요, 조국 욕을 하면 애국당 취급을 받는다. 요즘 같아서는 대한민국이 반으로 나뉘어 있는 느낌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서 본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의 문제는 불안정한 정체성과 대상관계를 특징으로 하는 경계성 인격장애(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의 병리 현상과 닮아 있다. 정체성과 정서적 혼란을 특징으로 하는 경계성 인격장애는 정신증과 신경증의 경계선(borderline)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경계성 인격장애 환자에서 많이 보이는 방어기제 중 하나가 투사적 동일시(projective identification)이다. 투사적 동일시는 대상관계 정신분석가인 멜라니 클라인(Melanie Klein)이 1946년 발표한 한 논문에서 처음 사용된 용어이다. 어려운 개념일 수도 있는데 자신의 나쁜 자기(bad self)를 타인에게 위치시키고(투사), 그 사람을 마치 그런 대상인 것처럼 대함으로서(동일시), 대상을 조정하려는(controlling) 무의식적 방어기제라 생각하면 된다.
일상에서도 이런 정신기제는 얼마든 살펴볼 수 있다. 남편이 자신에게 무심하다고 친구에게 분노를 토하는 한 여인을 생각해보자. 여인은 남편이 연애 때와는 달리 자신에 대한 열정이 식었다며 화를 내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이는 자신의 일부분에 있는 ‘식은 열정’이라는 나쁜 대상(bad object)을 남편에게 투사한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도 남편을 소홀히 대하면서 상대가 그 반응으로 보이는 모습을 가지고 역시 남편은 나쁜 대상이었던 것처럼 동일시한다. 그 상황을 모르는 친구는 여인이 말하는 생각과 감정을 동일시하게 되면서 여인의 남편을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마지막 과정을 투사적 역동일시(projective counteridentification)라고도 부른다.
경계성 인격장애 환자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어떤 대상을 이분법적으로 생각한다. 모 아니면 도(all or nothing)의 이분법적 사고를 통해 세계를 흑과 백으로 나눈다. 정신과 병동에 경계성 인격장애가 환자가 한 명 입원하면 투사적 동일시, 이분법적 행동을 통해 환자들 사이의 편을 가르거나, 치료진와 환자들 사이의 관계를 이간질시켜 분열(splitting)시키는 일들이 종종 벌어지기도 한다.
기회의 불균형이나 차별, 특혜, 특권의식, 권위의식 등을 적폐로 생각하는 정권이 이를 어떻게 이용하는지 보면 경계성 인격장애 환자에서 보이는 투사적 동일시, 이분법적 사고, 분열의 정신기제가 그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 정권의 페르소나 조국 장관을 보자. 밝혀진 바대로라면 현 정권이 적폐로 규정한 특혜, 특권, 기회주의적 행동 등을 종합세트로 보여준다. 말대로라면 과거의 조국은 이런 적폐를 상대 진영에 투사하면서 비난해 온 것이다. 자신의 일부분의 나쁜 대상(bad object)을 상대 진영에게 투사하면서 비난하고 이를 통해 국민을 조정해 왔다. ‘내로남불’이라는 것이 결국에는 투사적 동일시이다.
법무부 장관으로 기어이 임명되어 검찰 개혁을 이룩하겠다는 장엄한 의지를 살펴보자. 검사의 지위를 이용하여 강압적인 수사를 하는 검찰 조직은 개혁을 해야 하는 나쁜 조직(bad object)이다. 검찰의 저항인지 잘 모르겠지만 후보자의 부인을 기소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다. 역시 검찰은 나쁜 조직이었다(투사적 동일시). 그러니 다른 국민들도 이를 미워하고 적대적인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면서 국민을 조정한다(controlling). 그리고는 자신들이 나쁘다고 비난했던 권력의 남용을 그대로 답습하려는 법률을 제정하려 한다.
이는 대일 관계를 다루는 문제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프로세스다. ‘죽창을 들고’ 반일 항전을 외치고, 반일을 외치지 않은 사람은 ‘토착왜구’로 규정하면서 이분법적 사고를 종용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국민을 반으로 쪼개 놓는다(splitting).
앙가주망(engagement)이 지식인의 책무라고 무심히 이야기함으로써, 데장가주망(desengagement)를 미덕으로 삼는 지식인들을 소외시킨다. 때론 수십 명의 선동가들보다 세상일에 무심해도 자기 일에 충실한 과학자 한 명이 세상을 더 혁명적으로 바꾸기도 한다는 것을 조국 장관은 잘 몰랐던 모양이다. 거창한 신념이나 거대담론으로 포장을 하고, 정의라는 추상화된 보편개념으로 대중을 선동한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서 변형된 일곱 번째 계명처럼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
물론 이분법적 사고와 분열은 과거에도 정권을 잡기위해 정치인들이 많이 사용하던 방법이었고 이는 비단 현 정권만의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조국이 비난받는 것은 자신이 그토록 비판하고 개혁의 대상으로 이야기했던 것들이 결국 자신이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에 있다. 이를 비난하면서 대한민국을 분열시키고 조정해왔다는 것에 대한 성찰이 없다.
투사적 동일시, 이분법적 사고, 분열의 세 가지가 경계성인격장애에서 많이 나타나는 방어기제이지만 이 현상의 근원에는 불안정한 정체성의 혼란이 자리 잡고 있다. 어린 시절 경험한 정신적 외상 사건이 경계성 인격장애와 많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계성 인격장애가 어린시절의 외상경험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 바, 대한민국의 정신병리는 질곡의 현대사와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일제의 식민지 지배와 한국전쟁, 군부독재 등의 굵직한 역사적 사건과 연관된 정신적 트라우마는 현재도 대한민국 갈등의 주된 문제이다.
치료자를 통해 거울처럼 자신을 들여다보면서 무의식을 성찰을 해나가는 것이 정신치료의 과정이다. 그래서 정신치료는 자아의 성찰을 기본으로 한다. 약하고 두렵고 추악한 자신의 일부분을 성찰하지 않으면 치료의 기회조차 없다. 그리고 내담자가 과거의 트라우마로 괴롭다면, 과거의 트라우마를 현재의 트라우마로 인식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이 치료의 중요한 요소이다. 과거의 기억을 잘 ‘소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이 과정에는 지난한 시간이 필요하다.
현재 대한민국 사회는 제대로 소화되지 않은 트라우마들이 산재해 있다. 독재와 민주주의, 반일과 친일, 친북과 반공,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등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중이다. 김혜수 주연의 영화 「얼굴 없는 미녀(2004년 작)」는 경계성 인격장애를 앓고 있는 한 여성과 정신과 의사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화에서 얼굴이 없다는 것은 중의적 모티브를 갖는데 ‘얼굴이 없다’는 표현은 자신의 정체성이 없다는 의미를 갖는다. 정체성의 혼란을 극복하고 대한민국이 자신의 ‘얼굴’을 찾을 때까지는 많은 시행착오와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문화 인류학자인 마빈 헤리스(Marvin Harris)는 「문화의 수수께끼」에서 ‘예술과 정치는 무지, 공포, 갈등을 이용해 사람들의 자기의 사회적 삶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게 하는 집단적 환상체계(collective dream work)를 형성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러하니 내가 잘 모르는 것, 내가 두려워하는 것, 갈등과 반목이 일어나는 것이 있다면 ‘정치’가 이를 이용해 집단적 환상체계를 만들어 가는 것 아닌지 경계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공허한 정의를 외치는 자들을 경계해야 한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말처럼 ‘슬럼가의 영주’로 군림하는 가짜 철학자들을 경계해야 한다.
분당지상정신건강의학과 허윤석 원장